‘고생했어’라는 말을 배우는 일
가까운 사람에게 생략했던 말들
나는 감정을 말로 꺼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고마운 마음이 있어도 짧게 넘기고, 가까운 사이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해결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내게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생활하는 동안 말하지 않고 지나친 마음은 얼마나 많았을까.
고맙다고 생각하면서도 표현하지 않은 순간, 힘들어 보이는데도 먼저 물어보지 않은 순간,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 전에 해결 방법부터 꺼낸 순간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아내를 아끼고 있다는 마음은, 함께 살아가는 하루 속에서 얼마나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건네는 말과 일상의 행동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고마운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상대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함께하기로 한 일을 지키는 것부터 연습해 보고 싶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내 마음이 잘 전해지도록 조금씩 배워 가려고 한다.
1. 내 마음이 아내에게도 전해지고 있을까
부부 사이의 친밀감을 다루는 심리학 연구에서도,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돌보고 있다고 느끼는 경험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 내용을 우리 부부에게 대입해 보니, 내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보였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 마음도 어느 정도는 전달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함께 살고 있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고, 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하니까.
하지만 아내는 일상에서 그 마음을 조금 더 분명하게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물어봐 주고, 자신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봐 주고,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해 주기를 바랐다.
아내가 이야기한 ‘사랑의 언어’도 그런 요청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정하기보다, 아내가 실제로 어떤 순간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아내는 이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해 주었다.
“고생했다고 말해 줬으면 좋겠어.”
“내 마음을 먼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 요청에서 시작하면 된다.
2. 내가 생략한 말들을 돌아보기
나는 평소에 말을 자세히 풀어서 하지 않는 편이다. 대략적인 뜻을 전했으면 상대도 내가 생각한 만큼 이해했을 것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그런 습관이 더 쉽게 나온다. 오래 함께했으니 내 의도를 알 것 같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질 것 같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다 보면 내가 생략한 말이 상대에게 필요한 정보일 수 있다.
“저녁에 들어갈게”라는 말에는 도착 시간이 빠져 있다. “내가 할게”라는 말에는 언제, 어디까지 하겠다는 설명이 없다. 나는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해도, 상대는 다시 묻거나 기다려야 할 수 있다.
이제는 말을 건넨 뒤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상황을 상대도 알고 있는가.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이 무엇인지 분명한가. 계획이 달라졌다면 그 사실을 먼저 전했는가.
“지금 출발해. 18시 20분쯤 도착할 것 같아.”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아이들 재우기 전에 마무리할게.”
조금만 구체적으로 말해도 서로 다시 확인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
마음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고마워하면서도 말하지 않았고, 걱정하면서도 묻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과 실제로 표현한 것을 돌아보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지나치게 생략하지 않는 것. 내가 연습하고 싶은 배려는 거기서 시작한다.
3. 퇴근 후에는 아내의 하루를 먼저 알아보기
내가 가장 먼저 연습할 일은 퇴근 후의 첫마디다.
집에 들어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내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오늘도 아이 둘 보느라 고생 많았어. 오늘은 어땠어?”
아직 듣지 않은 하루를 내가 다 아는 것처럼 설명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먼저 물어보고, 아내가 들려준 구체적인 내용에 반응하고 싶다.
아내가 “오늘은 둘이 번갈아 울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라고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밥 먹을 틈도 없었구나. 계속 둘을 챙기느라 많이 지쳤겠다. 내가 지금 아이들 볼게. 우선 밥부터 편하게 먹어.”
아내가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제대로 얘기를 못 해서 답답했어”라고 하면 내 반응도 달라져야 한다.
“오늘은 어른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서 답답했던 거구나. 무슨 이야기가 제일 하고 싶었어?”
내가 연습할 순서는 간단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그 일이 아내에게 어땠는지 확인하고, 지금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감정을 짐작했는데 틀릴 수도 있다.
“서운했겠다.”
“서운한 것보다 혼자 다 해야 한다는 게 화가 났어.”
“그랬구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화가 났던 거네.”
그럴 때는 내 해석을 고집하지 않으면 된다. 상대가 설명하는 경험에 맞춰 내 이해를 고쳐 가려고 한다.
아내가 이미 쉬고 싶다고 말했으면 아이들을 맡고, 들어 달라고 말했으면 듣는다. 원하는 것이 불분명할 때는 이렇게 물어보면 될 것 같다.
“지금은 더 들어줄까, 아니면 같이 방법을 생각해 볼까?”
4. 명확하게 말하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기
아내가 정확한 시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따 갈게”라고 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출발해. 18시 20분쯤 도착할 예정이야.”
아직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모르는 상황까지 설명하면 된다.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아직 확답은 어려워. 17시 30분에 상황을 다시 알려줄게.”
집안일을 맡을 때도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오늘 아이들 목욕은 내가 맡을게. 옷 준비하고 욕실 정리하는 것까지 할게.”
바로 대화하기 어려울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일을 10분 안에 마무리하고, 21시에 내가 먼저 이야기하러 갈게.”
명확하게 말하려고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지는 않겠다. 예상은 예상이라고 말하고, 달라지면 먼저 알려야 한다.
특히 “알려줄게”도 약속이라는 점을 기억하려고 한다. 아내가 다시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면, 확인하는 일까지 아내에게 남는다.
내가 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내도 자신의 시간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겠다.
5. 해결책을 말하기 전에, 그 일이 어떤 경험이었는지 듣기
나는 문제가 생기면 방법부터 찾는다.
아내가 다른 사람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그렇게 말하면 되지”, “신경 쓰지 마”, “그 사람을 안 만나면 되잖아”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여러 방법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 내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그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외로움을 나누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말을 바꾸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별일 아닌데”라는 말이 떠오를 때는 이렇게 물어보겠다.
“나는 처음엔 가볍게 들었는데, 당신에게는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남았어?”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라고 묻고 싶을 때는 조금 더 들어보겠다.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되는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말해 줘.”
“그러니까 내가 전에 말했잖아”라는 말은 멈추고 싶다.
“그 상황에서 많이 난감했겠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는 같이 생각해 보자.”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사건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아내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의 마음까지 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 반응 때문에 거절당한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쓰였겠다. 그 사람이 실제로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우선 어떤 상황이었는지 들어볼게.”
아내와 내 의견이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기억해. 그래도 내가 말을 끊어서 당신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는 부분은 알겠어. 그 부분은 미안해.”
내 생각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아내가 겪은 일을 듣기도 전에 내 설명부터 끝내려는 습관을 줄이려고 한다.
6. 집안일을 계획하는 수고도 함께 나누기
나는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확인하고 채워 두는 일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두고, 아이들을 씻기고, 사용한 것을 정리하는 일도 평소에 하고 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집안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앞으로는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더해, 생활에 필요한 것을 미리 생각하고 정하는 과정도 조금 더 나누고 싶다.
예를 들어 저녁 한 끼를 준비하는 일은 불을 켜고 요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어진다.
무엇을 먹을지 정하고, 최근에 먹은 메뉴와 겹치지 않는지 생각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고, 부족한 것을 주문해야 한다. 재료가 언제 도착하는지, 그날 요리할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식탁에 올라온 음식만 보면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 끼가 준비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생각과 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더 맡아보고 싶은 것은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재료를 준비하는 데까지의 과정이다.
“오늘 뭐 먹을까?”라고 물은 뒤 답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냉장고를 살피고 몇 끼의 식단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필요한 재료를 정리하고 주문하는 것까지 이어서 맡고 싶다.
“이번 달 저녁 메뉴를 생각해 봤어. 집에 있는 재료를 먼저 쓰고, 부족한 건 내가 주문할게.”
이때 실제로 요리하는 사람이 만들기 편한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내가 메뉴를 정했다는 이유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계획하면 조리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평소 자주 먹는 메뉴와 준비에 쓸 수 있는 시간을 함께 이야기해 두고, 그 안에서 내가 계획해 보려고 한다. 매번 모든 선택을 다시 물어보기보다, 함께 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내가 판단하고 준비하는 범위를 늘려 가고 싶다.
처음부터 일주일 전체를 맡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선 며칠의 저녁 식단부터 시작하고, 실제로 해보면서 양이나 준비 시간을 조정하면 된다. 맡기로 한 날에는 재료가 제때 준비되는 것까지 내가 챙기겠다.
이렇게 나누면 아내가 하루 중 반복해서 떠올려야 하는 일 하나를 내가 맡을 수 있다. 요리를 시작할 때 메뉴와 재료가 준비되어 있도록, 그 앞의 과정을 책임져 보고 싶다.
앞으로 집안일을 나눌 때는 눈에 보이는 작업과 함께, 그 일을 위해 무엇을 미리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지도 살펴보려고 한다.
내가 이미 잘하는 꼼꼼함을 그 과정에도 써보고 싶다. 서로 어떤 일을 맡으면 부담이 줄어드는지 이야기하고, 정한 부분은 각자가 기억하고 챙기는 방식으로 함께 생활해 나가려고 한다.
6. 인정하는 말을 실제 휴식과 연결하기
7. 아내를 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표현하기
아내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면서, 내가 아내를 육아와 집안일을 수행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하려고 한다.
아내에게는 아이들과 관계없는 관심사와 생각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내가 처음 좋아했던 아내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일상에서 조금 더 알아보고 표현하고 싶다.
“아까 그 이야기할 때 당신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
“오늘 잠깐 같이 웃었던 시간이 좋았어. 당신하고 이런 시간을 더 갖고 싶어.”
“아까 아이가 하려던 말을 끝까지 기다려 주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의 세심함이 좋았어.”
억지로 좋은 점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내가 실제로 보고 느낀 것을 말하면 된다. 그냥 지나쳤던 장면을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한다.
아내의 하루를 묻는 대화에 아이들 이야기만 남지 않게 하고 싶다.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자기 시간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손을 잡거나 안아 주는 것도 아내가 편안해하는 방식과 때를 알아가며 표현하겠다. 아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아가려고 한다.
9. 어색하게 시작하되, 꾸준히 확인하기
처음에는 말이 어색할 것이다. 준비한 문장을 떠올려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연습해 보려고 한다. 아내가 직접 부탁한 말이라면, 그것을 기억하고 꺼내는 일에도 내 마음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세 가지부터 시작하겠다.
퇴근 후 먼저 알아보기.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수고를 말하며, 오늘이 어땠는지 듣는다.
함께 정한 일을 스스로 시작하기. 아내가 다시 부탁하지 않아도 내가 맡은 돌봄과 집안일을 챙긴다.
필요한 정보를 먼저 전하기. 귀가 시간, 일정 변경, 대화를 다시 시작할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린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짧게 돌아보려고 한다.
“이번 주에 내가 한 말이나 행동 중에 도움이 된 게 있었어?”
“내가 하려고 했는데 잘 전달되지 않은 것도 있었어?”
많이 지친 날에는 다정한 말을 들어도 아내의 기분이 바로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 “이만큼 했는데 왜 아직도 그래?”라고 묻는다면, 내 표현이 아내에게 또 하나의 반응 의무가 될 수 있다.
아내가 즉시 달라지는지를 살피기보다, 내가 하기로 한 일을 꾸준히 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려고 한다.
나 역시 내 상태와 필요를 말하겠다.
“나도 오늘 많이 지쳤어. 우선 내가 아이들 목욕을 맡고, 끝나면 30분 정도 쉬고 싶어. 오늘 저녁을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내가 아내의 모든 감정을 없애 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 어떻게 듣고, 내가 한 약속을 어떻게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부담을 얼마나 책임질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
나는 여전히 무던한 사람일 것이다. 갑자기 감정 표현이 풍부해지거나, 모든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조금 더 알아보고, 알아본 것을 말로 표현하고, 표현한 마음에 맞게 행동하는 일은 연습할 수 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내게 필요한 첫 문장은 아주 길지 않았다.
“오늘도 아이 둘 보느라 고생했어. 오늘은 어땠어?”
그다음에는 대답을 들을 시간을 내려고 한다.
밥을 못 먹었다면 아이들을 맡고,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기다리게 했다면 사과하고 다음 약속을 지키겠다.
그런 하루를 쌓아 가고 싶다. 아내가 자신의 수고와 마음을 말했을 때, 내가 알아듣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더 자주 느낄 수 있도록.